붉은 대공의 장례식은 엄격한 국장의 형식으로 선왕인 에드워드 4세와 모후 이자벨2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렸던   인벤투스 대성당에서 치뤄졌다.


이제 제롬은 부왕과 모후,  마지막 남은 숙부까지 잃고,아직 어린 안느공주와 함께 그야말로 '천애고아'가 돼버렸다.


제롬은 살아생전 숙부가 사랑했던 붉은 색과 골드로 장식된 검은색 철제 관에 숙부가 가장 즐겨입던 옷으로 단장시켜 뉘였다.


관위 머리맡에 작은 파랑새가 음영으로 조각된 섬세하고 아름다운 관이었다.


평소 디테일에 집착하고 예술품을 사랑한 붉은 대공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다.



대성당의 높은 단위에 대공의 관이 놓이고 대주교에 의해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브리태니아의 주요귀족들과 왕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이 왕실규범에 따라 노팅엄 대공의 장례식에 모두 참석하여 떠나는 그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폐하.그는 위대한 검은용의 후예답게 명예롭게 살다 검의용의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선친 흑태자와 형님 에드워드4세의 곁으로 간것이니,너무 슬퍼하지 마옵소서."


원로원 수장 에드워드 펄롱 후작이 제롬을 위로했다.



꼬박 하루가 걸린 장례식이 끝났음에도 검은 상복을 입고 꼬박 하루를 대공의 관옆을 떠나지 않는 제롬을 말리던 안느와 달리아는 할수없이 자신들의 처소로 돌아갔다.


 제롬은 홀로 흐느끼며  텅빈 대성당에 혼자 남아 숙부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요정왕.."


율리우스가 조용히 제롬을 불렀다.


눈물로 퉁퉁부은 얼굴로 제롬이 돌아봤다.


다른 대륙의 귀빈들은 대부분 돌아갔지만, 오직 율리우스만이 남아 혼자남은 제롬을 위로했다.


"꼭 이렇게까지 안해도 돼. 

어서 너도 떠나.율리우스.

어차피 난 너의 진실을 믿을 수 없어.

네머릿속엔 오직 '그짓'밖에 없을 테니깐.

넌 단지 나랑 자고 싶어서 아무말이나 달콤한 말을 뱉어낼 뿐이야."


제롬의 너무 울어 빨개진 눈시울에 푸른 두눈엔 원망과 미움을 가득 담아 율리우스를 노려보았다.


"아니야.아니야. 요정왕!

오해라고. 도대체 어디서 내가 뭘잘못했길래?

내 사랑은 진실이야!"


율리우스는 억울해서 고개를 도리도리 해가며 소리쳤다.


"네 사랑은 하룻밤 잠자리 상대와의 유희를 말하는 거겠지.

과연 대륙의 최고 플레이보이 율리우스2세 대공 전하 다워.

나역시 깜박 넘어갈뻔 했지 뭐야."


제롬이 훌쩍거리면서도 율리우스에 대한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



"요정왕. 숙부의 죽음은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마음을 알아줄 때도 됐쟎아.

나 정말 너를..."


율리우스는 아직도 제롬에게 주었던 블루 다이아반지를 주머니속에서 주물럭거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만해. 그놈의 사랑타령.

네가 사람들앞에서 한 말못들었어?

난 숙부를 사랑했어.

숙부의 시신을 앞에 두고 네 더러운 욕망을 배설하지 마!"


"아니야.그게 아니란말야!

내가 너에게 준 블루 다이아의 의미를 모르겠나?

다이아의 의미는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이야!"


율리우스가 제롬에게 천천하 다가가 제롬의 한손을 잡고 소리쳤다.


"네 눈동자색을 닮은 푸른색 다이아를 찾느라 전 대륙을 헤맸어!

넌...넌 내게 영원한 요정왕이야!"


제롬을 바라보는 율리우스의 두 연두빛 눈동자가 흔들였다.


"끝까지 말도 안되는 변명을 지껄이네!

듣기싫어! 이런 값비싼 보석으로 얼마나 많은 여인과 사내에게 고백했을까?

안봐도 뻔해.다시는 내눈앞에 띄지마."


차갑게 말을 뱉는 제롬의 입안에서는 그 스스로 쓴맛을 느꼈다.


제롬은 끝까지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해대는 율리우스에 더욱더 실망하여 그를 외면했다.


제롬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제롬은 춥고 외로웠다. 


가슴이 한없이 공허하고 차가왔다.


오직 머릿속엔 군터만이 맴돌았다.


제롬은 그의 고개를 홱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뒤도 안돌아보고 가는 제롬의 뒤모습을 멍하게 보며, 율리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율리우스는 멍하니 서있다 붉은색과 황금장식으로 장식된 노팅엄 대공의 검은 관을 바라 보았다.


'차라리 당신이 부럽군.

요정왕이 당신에게 죽기전에 무슨 말을 했기에 그토록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거요?

붉은 대공.'


화려한 황금으로 장식된 붉은 관안에 정말 잠들 듯 편히 누워있는 대공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손에 세로로 그가 가장 아낀 애검이었던 쌍룡머리장식의 바스터드를 가슴위로 올려 놓고 있었다.


그의 가슴위가 초록빛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한눈에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게 세공된 거대한 에머랄드 팬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붉은 대공이 매우 아끼고 아껴서 365일 매일 걸고 다닌 것이었다.


율리우스가 살짝 주위를 돌아봤다.


장례식이 끝난지 하루가 지나 아무도 없었다.


슬금슬금 다가간 율리우스는 대공의 목걸이에 달린 녹색 팬던트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툭.


갑자기 초록색 대형 에머랄드 팬던트가 반으로 열렸다.



'이...이것은...'


붉은 대공의 목에 걸린 대형  에머랄드 목걸이안에는 윤기나는 검푸른 머리카락이 들어있었다.


탐스런 제롬의 머리카락이었다.


그것이 제롬의 것인 것을 율리우스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율리우스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율리우스는 제롬의 머리카락을 꺼내 코에 대고  제롬의 냄새를 맏았다.


'아. 이 아카시아 나무 꽃향기...킁킁. 너무 좋아. '


율리우스의 어두웠던 얼굴은 금방 환하게 밝아졌다.


울리우스가 검위로 모아진 대공의 한쪽 손을 꺼내어 악수하며 혼자 속으로 사과했다 


'노팅엄 대공. 솔직히 우리 요정왕 그동안 실컷 데리고 잤쟎아.

늘 요정왕 혼자 독차지하고. 안그래요?

그러니까..요것하나만 양보합시다.

미안하오.붉은대공.

목걸이는 그대로 둘테니 내용물만 실례합시다.'


율리우스는 조심스럽게 한올 한올 제롬의 머리카락을 모아서 그의 황금수가 놓인 비단주머니에 넣고, 자켓의 가죽 안주머니안에 슬쩍 넣었다.


붉은 대공의 에머랄드 팬던트를 도로 대공의 가슴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떠나며, 그도 붉은 대공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붉은 대공.당신은 훌륭한 연적이었어!

저 세상가서 편히 쉬시오.

요정왕은 내가 잘 챙기겠소."


***************


붉은 대공의 장례기간 7일동안 제롬이 거의 탈진하여, 총리대리 달리아는 어쩔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국왕의 휴양지를 수도 데본근처의 플로리아 궁으로 정하고, 에드워드5세 국왕폐하의  3주간 휴가를 공포했다.


사실,달리아는 제롬의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이라도 할까봐 걱정했다.


6살때부터 소꼽친구이던 달리아는 제롬의 육체와 정신 모두가, 안느공주보다 더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유리멘탈'의 국왕을 지키기 위해 수십명의 시녀와 시종이 조를 짜 24시간 제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절대로 폐하를 혼자 두어서는 안된다!

내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범이 없으면 여우가 왕노릇한다고...

이제 브리태니아 에드워드5세 치하의 정권에서는 달리아 총리대리의 실세가 가장 막강했다.


중앙궁전부터 전 브리태니아의 곳곳에 달리아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군터경은?"


"네. 총리대리님.

군터 후작은 트레바나에서의 업무를 마치고,노팅엄 대공의 부음을 듣고 바로 출발했다 합니다.

문제는 트레바나가 프랑크제국 접경로 심한 분쟁지역이라 바로 직항로로 선박을 구할 수 없어 할수없이 할슈타인 공국을 돌아 햄스타운항에서 내일 출항한다 합니다.

아마도 내일 모레쯤이나 여기 수도 데본에 도착할 듯 합니다."


'그가 빨리 와야 국왕폐하가 다시 기운을 회복하신다.

아! 제롬! 너는 너무 손이 많이 가는 국왕이야.

왜 이렇게 약해빠진거니? 

몸이 허약하면 마음이 독하기라도 하던가..

이러면 내가..이 달리아가 미안해지쟎아.'





그러나 개인 별동대 정보조직을 운영하여 전 대륙의 정보를 손에 끌어모으고 있는 달리아 조차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교황의 얼굴마담역할을 하는 카이르 율리우스 2세가 사실은 교황의 '비밀금고지기'로 달리아의 정보조직 80%는 이미 율리우스 대공에게 매수된 상태였다.


그덕에 항상 제롬에 관한 기밀은 달리아보다 1차적으로 율리우스 대공에게 전달됐다.


"뭐? 한스 헤르만이 아직 브리태니아내에 있다고? 그 작자가 떠난게 아니란 말인가?"


"넷. 대공전하.

그자는 그 황녀란 여자를 귀국시키고 아직 브리태니아에 볼일이 남았다며 데본근처 요크셔 주의 한 백작의 성의 거처하고 있습니다."


" 볼일? 무슨 볼일?

그 자가 이 브리태니아에 무슨 일이 아직 남았다는 것인가?

아니.잠깐!"


문득 율리우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

플로리아궁의 화려한 대형 욕실.

화려한 컨데라산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조각들사이로 대형 타원형 욕조가 보였다.


플로리아 호수물을 뿜어내는 사자상의 머리부분은 황금으로 만들어 은은한 라벤더 향을 풍기는 황동구리촛대위의 라벤더 향초의 불빛에 더 휘향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편안한 표정의 제롬이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뜨뜻하고 상쾌한 꽃향이 가득한 호수물속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제롬의 시중은 원래 목욕시종들의 담당이었다.

허나, 제롬의 나신을 보고 발기하여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시종들이 늘어남에 따라 모두 경력많은 시녀들로 교체되었다.


오랜만의 휴식의 달콤함에 취해 제롬은  머리까지 호수물아래로 푹 담가지도록 몸을 잠수시켰다.


아카시아 꽃향이 도는 맑은 호수물에 코높이까지 담그니 머리속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호호호.폐하.

그리 좋으십니까?

처음 플로리아 궁에 왔을 때만해도 너무 안색이 안좋으셔서 내심 저희들 걱정이 많았답니다."


수석 시녀장 제니가 어린 국왕의 표정을 살피며,환하게 웃었다 


연두빛 린넨타월로 제롬의 갸날픈 등을 닦던 소피와 앤젤라가 제롬의 몸을 살피며 한숨을 쉬었다.



"폐하. 너무 야위셨습니다.

왕자시절부터 입이 짧으시더니, 이제 성인으로 성장하셨는데도 여전히 체격이 그대로라 아직도 15살 소년같습니다. 어서 빨리 쾌차하셔야죠."


제롬이 나비의 날개같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아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수줍게 웃었다.


"그래도 키는 많이 컸어.172cm나 돼.

하지만 우리 안느공주가 이제 나보다 더 컷어.

그리고보니 세월 참 빠르네.

제니랑 소피가 나 아기때 씻겨주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호호홋. 우리 제로미 왕자님 기억력도 좋으시지.

이제 국왕폐하가 되셔서 어릴때 저희와의 추억따윈 다 잊으신 줄 알았는데."


소피가 제롬을 따뜻하게 내려다 보며 엄마미소를 보냈다.


"어흑!!"

"컥!"


그때 수석시녀장 제니가 밖에서 인기척을 듣고 놀라서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무엄하다! 폐하께서 휴식중이신데 왠 소란이냐?"


욕실 바깥쪽 투명실크로 겹겹히 쳐진 천막형 커텐사이로 굵은 저음의 사내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내 물건이 있다해서 찾으러 왔다."


욕실안의 8명의 시녀들의 표정이 굳었다.


제롬은 놀라서 눈이 왕방울만해져서 소리쳤다.


"감히 짐이 휴식중인데,국왕의 은밀한 공간까지 쳐들어오는 대역무도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찌이이익.


욕실안을 가리고 있던 초대형 커튼은 순식간에 갈갈히 분해되어 조각조각 흩어졌다.


거대한 대형 야생곰같은 2m가 넘는 거대한 사내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불쑥 나타났다.


제롬과 시녀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사내는 12살짜리 어린애 크기의 대형 철검을 들고 있었고,사내의 등뒤로 수십명의 거대한 인영들이 보였다.


모두 검과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 차림이었다.


사내는 프랑크 제국 황태자 한스 헤르만이었다.


"국왕을 데리러 왔다. 

그런데 약해빠진 브리태니아 기사들이 겁없이 반항하더군."


한스 황태자가 플로리아 호수물로 가득한 욕조안으로 무엇인가를 던졌다.


플로리아 궁을 지키던 황실근위대의 기사 3명의 머리였다.


"꺄아아악!"

" 꺅!


시녀들이 혼비백산하여, 8명이 모두 제롬이 누워있던 호수물안으로 뛰어들어 한덩어리로 뭉쳐서 제롬의 나신을 가렸다.


"네년들이 살고 싶으면 빨리 에드워드5세를 내놓아라! 저 죽은 기사놈들꼴이 되고 싶은 게냐?"


한스가 차가운 눈으로 시녀들에게 검을 겨누며 협박했다.


참다못한 제롬이 말리는 시녀들을 뿌리치고 호수물위로 일어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하라!  한스 황태자.

짐의 왕관이 탐나 짐을 노린 거라면,죄없는 내 신하들을 해치지 말고,  차라리 나를 죽여라!"


한스의 두눈동자는  제롬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순간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죽이다니오? 에드워드 국왕 폐하.

그런 섭한 말씀을. 

허접한 폐하의 왕관따위보다 '진짜' 전리품을 가지러 왔습니다.

숙부께서 지셨으니,폐하의 몸은 이제 승리자에게 넘어간 간 

것 입니다.

결투의 승자가 패자의 것을 취하는 것이 승부의 세계에서의 냉정한 원리니까요."


한스 헤르만이 거대한 흰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조아라 노블레스 작가. 회사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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